신해철씨가 결국 사망했습니다. 마왕으로 불리던 그였기에, 수많은 대중들의 그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없는 죽음이 어디 있으랴만은 치료를 목적으로 방문했던 병원을 끝으로 그는 끝끝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6년의 긴 공백을 뒤로한 채 대중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온 그에게는 많은 계획표가 있었습니다. 대중들 속으로 다시금 들어오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난 상황이었지만, 결국 그 자신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남긴 이야기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여러 방송과, 무릎팍도사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가는 만큼, 불법다운로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불법으로 들었으면 노래가 좋네 마네 하지 말고... '닭' 치고 있으라는 이야기.
아이돌들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까지 넘나들며 유해매체로 지정한 국회에 대해서,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자질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국회를 유해 장소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날카로운 이야기.
안정환 선수의 사건에 대해, 아무리 많은 야유가 있었어도 묵묵히 인내한 다음 경기를 끝내고 경기 이후에 제소를 하거나 상대팀 팬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면 안정환 선수를 존경했을 거라고, 그러나 경기 중에 가족과 아내에 대한 모욕을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안정환 선수를 사랑한다는 이야기.
국회의원들이 민심을 모르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삼겹살 집이나 설렁탕집에만 들어가도 알 수 있는 민심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냐는 이야기까지 모두 말입니다.
그의 진지한 표정 뒤에 감춰진 슬픔이 있었습니다 ▼
사진 인용 : 신해철
그가 남긴 음악들
신해철은 사실상 음악으로 대중들의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1988년 MBC의 강변가요제를 통해서 '아기천사'의 멤버들과의 친분으로 인해서 출전했지만 입상에는 실패했던 그가, 같은 해에 MBC 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를 결성하면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는 1990년부터 솔로로 활동하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내놓고, 더없이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 그만의 음악 스타일을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N.EX.T를 결성하고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당시 발매했던 음반의 경우 일본에서도 평가가 좋았을 정도로 상당한 호평을 받기도 했었는데요. 그렇게 그는 계속해서 음악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1998년부터 솔로 활동이나 유학을 하며, 또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사랑한 후에라는 곡을 리메이크 했고, 2002년에는 이대로가 좋을 뿐야를 리메이크, 이후로도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6년간의 공백을 깨고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넥스트의 6집. 666 파트1을 내놓고 대중 앞에 나선 것입니다. 컬투쇼를 비롯해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게스트로서, 또한 SNL코리아까지 나오며 코믹한 모습까지 선보이기도 했었습니다.
마치 지금을 위해 만든 노래처럼, 그는 우리에게 노래로 말합니다. 슬픈 표정하지 말라고 말이죠 ▼
그가 보여준 인생
신해철은 처음부터 아내에 대해서 각별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아내 윤원희씨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미국의 명문 여대 '스미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골드만삭스 투자회사에서 일을 했으며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었는데요.
신해철과 교제를 하는 도중, 윤원희씨가 암 투병을 하는 도중이었지만 신해철은 윤원희를 돌봐야 한다면서 2002년 9월 29일에 남몰래 비밀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아내가 암을 완치한 이후, 2006년 9월 14일, 결혼한지 4년만에 드디어 첫 딸인 신지유를 얻었으며, 2009년 7월 15일경에는 둘째 아이인 아들 신동원을 얻기도 했습니다.
방송에 나와서는 아내를 영숙이로, 딸을 동동이로, 아들을 동생이로 부르며 이번 넥스트의 여섯 번째 앨범 666 파트1의 자켓에도 이 명칭을 사용할 정도로 그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었습니다.
담담한 듯 했지만, 마음 속의 아픔이 있었던 신해철 ▼
사진 인용 : 신해철
신해철 사망에 대해, 그에게 묻는다면?
이러한 신해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가족과 음악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소신을 담담하면서도 진중하게 전달하고, 대중 앞에서 언론 아닌 그가 언론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신해철은 지난 2011년 7월, 한 방송을 통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영상 유언'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 다하고 떠날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가 남기는 이야기 편지, 내 유언장이다"라면서 시작된 유언..
신해철은 "친척들 중에서 급사한 분들이 몇분 계신데,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은 작별인사를 못한다"면서 "결혼 전 자살충동의 경향이 정말 강한 편이어서 조절하는 훈련이나 치료를 받았는데 아이들이 생기고부터는 너무 행복해서 저절로 치유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언론이나 몇몇 네티즌들은 '의료사고'가 아닌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의혹론을 제기할때, 신해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 언제라도 가족과 함께이고, 또한 음악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말이죠.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했고 아내를 사랑했던 신해철 ▼
사진 인용 : 신해철
그가 남긴 마지막 모습
신해철은 팬들 앞에 서서 한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언제나 당당했고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자살충동이 있었을만큼 우울한 감정이 있었지만 그러한 마음의 고통도 가족으로 치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음악을 사랑하고, 언제나 솔직했으며,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의 기억 속에, 우리의 기억 속에 그는 영원히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언론이 과도한 집착으로, 과대 망상증으로 그에게 잘못된 관심을 쏟게 하더라도, 가족들만큼은 진짜 팬들만큼은 그에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신해철 사망 소식, 마왕 신해철이라면 결코 울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언제나 그를 그리워하며 울고만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첫 솔로곡이었던 "슬픈표정하지 말아요"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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